
-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평범한 사람도 간수 옷을 입으면 저절로 잔인해진다는 이야기로 알려졌습니다.
- 남은 기록을 보니 간수들은 무엇을 하라는 지시와 더 엄하게 하라는 재촉을 받고 있었습니다.
- 상황이 사람을 바꾼다기보다, 그 상황을 이끄는 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가 컸다는 쪽으로 읽힙니다.
안녕하세요, 태오입니다. 오늘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에게 간수 역할을 맡겼더니 며칠 만에 잔인해졌다는 그 실험입니다. 혹시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다면,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1971년 8월,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가짜 감옥을 만들었습니다. 신문 광고를 보고 온 지원자 가운데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고 판단된 대학생 24명을 골랐고, 하루에 15달러를 주기로 했습니다. 동전을 던지듯 무작위로 절반은 간수, 절반은 죄수가 됐습니다.
실험은 2주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엿새 만에 멈췄습니다. 간수들이 죄수를 점점 거칠게 다뤘고, 죄수들 가운데 몇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사람을 바꾼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됐습니다. 교과서에 실렸고,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됐고, 감옥 안의 학대를 설명하는 자리에 오랫동안 불려 나왔습니다.
기록을 다시 펼쳐 보니
이 이야기의 전제는 간수들이 스스로 잔인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역할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이었습니다.
2019년 프랑스 연구자 티보 르 텍시에는 스탠퍼드에 보관된 녹음과 문서, 참가자 면담을 바탕으로 이 전제를 따졌습니다. 그가 짚은 것은 크게 셋입니다.
- 미리 정해 둔 규칙죄수를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것처럼, 대할 방식이 실험 전에 적혀 있었습니다
- 더 엄하게 하라는 재촉교도소장을 맡은 학부생이 순한 간수에게 더 단단하게 굴라고 말한 녹음이 남아 있습니다
-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간수간수들은 자기도 관찰 대상이라는 것을 듣지 못한 채, 연구진을 돕는 쪽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보면 간수들은 낯선 상황에 홀로 던져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연구진이 원하는 그림을 알고, 그 그림에 맞추려 애쓴 사람들에 가까웠습니다.
무너졌다던 죄수 쪽에서도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018년 한 기자가 가장 먼저 크게 무너졌던 참가자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비명이 대부분 연기였다고 답했습니다. 대학원 입학시험 공부를 하려고 참가했는데 책을 볼 수 없게 되자 빨리 나가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짐바르도의 반론을 더 보기
짐바르도는 이런 비판에 직접 답했습니다. 간수들에게 죄수를 때리거나 괴롭히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는 것, 그리고 간수마다 행동이 달라 모두가 잔인해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연구가 엄밀하게 통제된 실험이라기보다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 준 시연에 가깝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다만 시연이라면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비판의 무게가 실린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다르게 설계하면 다르게 흘러간다
2002년 영국의 두 심리학자 알렉스 해슬럼과 스티븐 라이커는 방송사와 함께 비슷한 감옥 상황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연구진이 간수를 이끌지 않고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결과는 정반대에 가까웠습니다. 간수들은 자기 역할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고 권위를 세우기를 망설였습니다. 오히려 서로 뭉친 죄수들이 간수들을 밀어냈습니다. 그 뒤 참가자들은 모두가 동등한 공동체를 꾸려 보려 했습니다.
| 스탠퍼드 (1971) | 영국 재연 (2002) | |
|---|---|---|
| 연구진의 자리 | 간수를 이끌고 방향을 줬습니다 | 뒤로 물러나 지켜봤습니다 |
| 간수의 모습 | 갈수록 거칠어졌습니다 | 권위 세우기를 망설였습니다 |
| 무리의 흐름 | 간수가 우위에 섰습니다 | 뭉친 죄수가 간수를 밀어냈습니다 |
두 연구를 나란히 놓으면 역할 이름보다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이끄는지가 흐름을 갈랐다는 것이 보입니다.
쟁점의 양면
그렇다고 상황이 사람에게 아무 힘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양쪽을 나눠 보겠습니다.
| 상황의 힘을 강조하는 쪽 | 이끄는 사람을 강조하는 쪽 | |
|---|---|---|
| 사람은 왜 잔인해지나 | 주어진 역할과 환경에 휩쓸립니다 | 이끄는 사람이 바라는 것에 맞추려 합니다 |
| 근거 | 실제로 간수 일부는 거칠게 굴었습니다 | 지시와 재촉이 기록에 남아 있고, 이끌지 않자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
| 책임은 어디에 | 개인보다 구조를 봐야 합니다 | 구조를 만들고 방향을 주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
두 시각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다만 뒤쪽 시각은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말이 책임을 너무 쉽게 흩어 버린다는 점을 짚습니다.
개인적인 의견
저는 이 실험이 오래 사랑받은 이유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서면 그렇게 된다면, 잔인한 행동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상황 탓이 됩니다. 그런데 다시 열어 본 기록은 그 상황 안에 방향을 정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조직에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거친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을 보면 대개 그렇게 하라고 말하거나, 그렇게 하는 사람을 칭찬한 누군가가 있습니다. 상황을 탓하기 전에 그 상황에서 무엇이 기대됐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편이 정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속한 자리에서 "다들 그렇게 한다"고 여겼던 일이 있다면, 그것을 처음 누가 바랐는지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Le Texier, "Debunking 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 American Psychologist(2019). Reicher & Haslam, "Rethinking the psychology of tyranny: The BBC prison study",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2006). Ben Blum, "The Lifespan of a Lie", Medium(2018). Inside Higher Ed 보도(2018-06-20). Britannica 「Stanford Prison Experiment」. 짐바르도의 반론은 prisonexp.org 「Response to Recent Criticism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