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그램의 기본 조건에서 40명 중 26명이 끝까지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러나 조건을 바꾸면 그 비율은 0%에서 92.5%까지 움직였습니다.
- 재촉이 명령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멈췄고, 붙잡은 말은 「실험을 위해 계속해야 한다」였습니다.
- 그래서 이 실험이 보여 주는 것은 맹목적 복종보다, 옳다고 믿는 목표에 협조하는 마음에 가깝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태오입니다. 오늘은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가운데 하나인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은 시키면 남에게 해를 끼친다」는 결론으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회사에서, 학교에서 윗사람의 지시를 받을 때 우리가 무엇에 흔들리는지와 바로 맞닿은 이야기입니다.
실험은 어떻게 진행됐나
1961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신문 광고로 참가자를 모았습니다. 참가자는 「선생」 역할을 맡았고, 옆방의 「학생」이 단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 스위치를 눌러야 했습니다.
스위치는 15볼트에서 시작해 한 번 틀릴 때마다 한 칸씩 올라갔습니다. 맨 끝은 450볼트였습니다. 사실 충격은 가짜였고 학생은 연기하는 배우였지만, 참가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참가자가 머뭇거리면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가 정해진 말로 재촉했습니다. 이 정해진 말을 심리학에서는 「재촉 문구」라고 부릅니다. 문구는 네 단계였습니다.
- 1계속해 주십시오가장 부드러운 요청
- 2실험을 위해 계속해야 합니다실험의 필요를 내세움
- 3계속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필요를 한 번 더 강조
- 4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유일하게 명령에 가까운 말
숫자는 무엇을 말했나
1963년에 발표된 첫 결과에서 참가자 40명 가운데 26명이 450볼트까지 눌렀습니다. 평범한 사람 셋 중 둘이 끝까지 간 것입니다. 이 65%라는 숫자가 이후 60년 동안 이 실험의 얼굴이 됐습니다.
그런데 밀그램은 이 실험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같은 방에 앉는 조건, 실험자가 전화로만 지시하는 조건 등 여러 변형을 돌렸습니다. 조건에 따라 끝까지 간 비율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 무엇을 봤나 | 결과 |
|---|---|
| 첫 발표의 기본 조건 | 40명 중 26명, 65% |
| 여러 조건 사이의 폭 | 0%에서 92.5%까지 |
| 여러 조건을 모은 평균 | 약 43% |
65%는 여러 결과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상황을 조금 바꾸면 사람들의 선택이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실험의 더 중요한 발견에 가깝습니다.
2009년 재현 실험의 숫자를 더 보기
윤리 기준이 엄격해진 뒤로 450볼트까지 가는 실험은 다시 할 수 없게 됐습니다. 2009년 산타클라라대학교의 제리 버거는 150볼트에서 실험을 멈추는 방식으로 다시 재 보았습니다. 150볼트는 학생이 처음으로 그만하겠다고 외치는 지점이고, 밀그램의 자료에서 이 지점을 넘긴 사람은 대부분 끝까지 갔기 때문입니다. 버거의 참가자 가운데 약 70%가 150볼트를 넘기려 했고, 밀그램의 비교 조건은 82.5%였습니다. 두 값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사람을 움직인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이 실험을 다시 읽게 만든 것은 재촉 문구를 하나씩 따져 본 연구들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장 명령다운 말이 가장 안 통했습니다.
버거의 연구진이 2011년에 재현 실험 참가자들이 남긴 말을 분석했습니다. 재촉이 강압적으로 바뀔수록 참가자는 오히려 따르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노골적인 명령은 복종보다 반발을 불렀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을 계속 누르게 한 말은 「실험을 위해 계속해야 합니다」였습니다. 실험의 목적, 곧 과학에 호소하는 말이 참가자를 붙잡았습니다. 2014년 영국의 심리학자 알렉스 해슬럼과 동료들의 분석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쟁점의 양면 — 복종인가, 협조인가
이 결과를 두고 해석이 갈립니다. 양쪽을 나란히 놓아 보겠습니다.
- 전통적 해석 · 복종권위 앞에서 사람은 판단을 내려놓고 지시를 따른다
- 새 해석 · 참여하는 협조옳다고 믿는 목표에 동의해서 스스로 계속한다
새 해석을 내놓은 쪽은 해슬럼과 스티븐 라이커 등입니다. 이들은 이것을 「참여하는 따름」이라고 부릅니다. 참가자는 시키니까 누른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목표와 실험자 편에 서서 눌렀다는 뜻입니다.
이 해석이 맞다면 위험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시키니까 했다」는 사람은 명령이 사라지면 멈춥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위해서」라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 계속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대의라는 이름이 붙으면 더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새 해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녹음과 기록은 참가자가 무엇을 말했는지를 보여 줄 뿐, 속마음까지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두 해석 가운데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전통적 해석은 「명령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새 해석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조심할 것은 명령보다 내가 동의하고 있는 목표입니다.
회사의 성과를 위해서, 팀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서 우리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누가 시켰나」보다 「이 목표가 이 행동까지 정당하게 만드는가」를 묻는 편이 더 정확한 질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좋은 일을 위해서」라는 말 때문에 망설이면서도 계속한 일이 있으신가요?
출처: Milgram, S. (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Burger, J. M. (2009). Replicating Milgram: Would people still obey today? American Psychologist. Burger, J. M., Girgis, Z. M., & Manning, C. C. (2011). In their own words: Explaining obedience to authority through an examination of participants' comments.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Haslam, S. A., Loughnan, S., & Perry, G. (2014). Meta-Milgram. PLOS ONE. Haslam, S. A., Reicher, S. D., & Birney, M. E. (2014). Nothing by mere authority. Journal of Social Issues. Reicher, S. D., Haslam, S. A., & Smith, J. R. (2012). Working toward the experimenter.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미국심리학회(APA) Monitor, 2009년 3월호.
